요가 이야기

아사나의 함정, 몸의 한계를 인정하기

다함이 없는 등 2023. 7. 16. 21:23

제가 처음 요가에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는 멋지고 아크로바틱한 자세가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거꾸로 서고, 발가락으로 머리를 터치하는 등 힘 있고 유연한 자세들을 익히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오래도록 유연하고 건강한 신체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파당구쉬타 다누라아사나

 

 

내가 사랑했던 '아사나'

요가를 시작한 후 제 몸은 빠른 속도로 아사나를 익히고 발전해 나갔습니다. 당시는 빠른 속도인 줄 몰랐고 더 부드러운 몸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하면 더딘 속도일 수 있습니다만, 현재 저의 아사나 발전 속도에 비하면 그땐 분명 훨씬 변화가 빨랐어요.

많은 요가 수련자들이 그러하듯 저의 수련도 아사나를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아니, 아사나'만' 했어요. 아사나는 저의 고질적인 승모근 통증을 사라지게 했고, 아사나를 할 때 몰입되는 감정이 너무 좋았습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어려운 아사나들을 하나씩 해낼 때마다 쾌감으로 들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익혀야 할 아사나가 굉장히 많이 남았다는 것이 설렜습니다. 평생을 수련해도 질리지 않겠구나 싶었죠. 

 

 

 

아사나에 대한 착각

제가 사진과 같은 아사나를 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고난도 아사나이긴 하지만 몸이 부드러운 사람들은 저보다 쉽게 해내곤 하는 아사나입니다. 저는 요가 강사들 사이에서 수련을 오래 했습니다. 그 사이에서 제 몸은 절대 부드러운 편이 아니었어요. 끊임없이 아사나를 잘하는 선생님들과 제 몸을 비교하고 제가 못쓰는 부위가 어디인지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은 때로 제 아사나에 발전을 가져다주기도 했어요.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제 아사나 발전 속도는 더뎌졌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1년 전 사진과 비교하면 더 움직임이 안 나온다고 생각될 때도 있어요. 물론 커다란 그래프로 생각하면 아직 느린 변화는 일어나고 있지만, 그 속도는 분명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해부학적으로 볼 때 이런 현상은 당연한 겁니다. 잘 쓰지 않아 긴장되어 있던 근육과 근막은 아사나 수련을 시작하면서 충분히 잘 이완되도록 바뀌었고 관절과 인대도 아주 느린 속도로 가동성을 조금씩 늘려나갔겠지요. 하지만 타고난 체형, 뼈의 모양이나 관절의 구조, 각도 등에 의한 한계에 부딪혀 아무리 노력해도 어려운 아사나들이 있었습니다. 인정할 수 없었어요. 수련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열심히 수련하면, 모든 자세를 언젠가는 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그 속에서 한참을 헤맨 것 같네요. 물론 죽자고 매달리면 지금보다 더 갈 수도 있습니다. 제 몸이 지금 모든 부분에서 다 한계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하지만 부상 없이 갈 수 있을 것인가? 지금보다 더 과신전, 과한 굴곡으로 만들어낸 아사나는 지금 내가 하는 아사나와 비교했을 때 좋은 점이 확연히 뛰어난가? 하는 부분은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의심해 볼 문제입니다. 

 

 

 

 

정말, 이게 맞니?

저는 제가 해낼 수 없는 아사나를 익히기 위해 몸을 혹사시켰습니다. 후굴을 할 때 경추를 너무 넘기다 목근육을 다치기도 하고, 우파비스타코나와 같은 자세를 무리해서 연습하다 한 동안 고관절에 통증을 달고 살기도 했습니다. 요가 단다 아사나를 연습하다가 발바닥으로 겨드랑이를 지나가는 정중신경을 눌러 2주가 넘게 중지 손가락에 저림을 느끼기도 했어요. 이때는 정말 다시 안 돌아올까 봐 무서웠습니다..;; 심지어는 혼자 비틀기 수련을 하다가 왼쪽 늑골 10번에 실금을 만들기까지. 누가 핸즈온을 잘못해 준 것도 아니고 저를 때린 것도 아닙니다. 제가 혼자 몸을 비틀어 갈비뼈에 금을 만들었다고요. 

저는 아사나를 사랑하면서도 아사나에 대한 의문을 오랫동안 가져왔습니다. 정말 유연하고 멋진 자세를 쉽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지만, 저렇게 아사나를 하면 뭐가 좋은 거지? 요가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하는 마음의 통제와 아사나의 연관성은 어디까지인 걸까? 

아사나를 할 때 우리는 집중과 몰입을 일으킵니다. 호흡을 더 많이 하고 호흡을 바라보기도 하고요. 이때 일어나는 몰입 감각과 개운함 등으로 인해 마치 이 아사나가 나의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이러한 느낌이 아사나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착각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아사나를 매우 잘하는 분이 있나요? 있다면 그분들은 언제나 높은 영적 수준과 훌륭한 성품을 갖고 있는지요? 

저는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의심에 대한 답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몸의 한계는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다

저는 오래 수련한 만큼 제 몸의 한계를 잘 압니다. 제가 어느 부위의 가동성이 떨어지는지, 어느 부위의 힘이 약한지, 제 몸의 균형이 어떤지 등이요. 위에 적었듯 저의 아사나 수련은 지금까지 제 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잘 못쓰는 부위를 더 쓰게 하고, 약한 쪽은 강하게 하고, 불균형한 부분은 균형을 맞추려 하면서요. 그중 일부는 좋아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한계를 넘어서려 하니 부상을 당하는 일이 많네요. 얘기인 즉, 제가 타고난 한계까지 교정될 부분은 어느 정도 교정되었다는 말입니다. 

저는 오른쪽 고관절보다 왼쪽 고관절의 가동범위가 떨어집니다. 오른쪽 고관절은 외전, 외회전 모두 왼쪽 고관절보다 더 넓은 범위까지 일으킬 수 있어요. 이러한 불균형이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인한 근육의 단축이나 틀어짐이라고 생각했죠. 타고난 골반뼈의 방향이나 고관절구의 각도, 위치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기억에도 없을 만큼 아주 어릴 때의 사진을 보니 오른쪽 고관절을 습관적으로 열고 누워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그것으로 볼 때 아마 타고난 뼈의 형상이 그렇거나, 아주 어릴 때부터의 습관으로 자라면서 관절/뼈의 방향이 다소 불균형하게 성장해 버린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물론 추측이고 나중에 제가 더 공부를 하게 된다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저의 왼쪽 고관절은 오른쪽 고관절보다 가동범위가 약간 떨어질 뿐, 전혀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통증이 있지도 않고, 일상생활을 하기에는 오히려 넘치는 가동범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계속 이 부분을 제 몸의 '문제'로 인식해 왔습니다. 왜? 아사나를 할 때 양쪽이 균형적으로 안 나오니까요.

이제 저는 제 몸의 이런 부분들을 더 이상 문제로 삼아 극복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의 아사나 수련

그렇다고 아사나 수련을 멈추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사나 수련은 맑고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몸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또 요가 지도자로서 회원분들에게 데모를 보이고 직업을 유지하는 데도 필요하지요. 저는 계속해서 아사나를 사랑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제가 하지 못하는 아사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아직 한계에 닿지 않은 저의 근육이나 근막, 인대 등이 허락하는 부분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더 고난도의 아사나에 접근할 수는 있겠지만, 이제 그 의미가 많이 사라진 것 같네요. 아사나를 할 때 조금 더 신중하게 내면의 감각을 느끼며 과한 범위까지 들어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아사나에 들이던 노력을 조금 거두고 다른 곳에 쏟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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