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수련

민물새우 잡기, 생명을 먹는 것과 아힘사(Ahimsa)

다함이 없는 등 2023. 10. 21. 20:44

저는 넉달차 세미 베지테리언입니다.

그간 붉은 육류는 섭취하지 않았고 가금류는 가끔 먹었습니다.

고기를 좋아하는지라 이러한 식이가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할만합니다.

점점 갈수록 닭고기와 오리고기도 덜 당기는 듯 합니다.

 

10월의 하늘, 그리고 황금 들녘

 

 

민물새우를 만나다.

육류를 멀리하는 제가 단백질을 채우는 수단은 생선과 해산물류, 계란, 치즈, 우유 등입니다.

그 중에서도 새우와 오징어, 계란을 가장 좋아합니다.☺️

새우는 바다새우만 먹었지 민물새우는 잘 먹을 일이 없는데, 남편이 갑자기 통발을 사서 맑은 곳에 던져놓고 왔다고 같이 건지러 가자고 합니다.

과연 새우가 너의 손에 잡혔을까? 반신 반의하며 함께 길을 나섰어요.

 

 

 

 

숨이 막히게 아름다운 곳입니다.

 

 

사실 이 장소는 예전에 남편과 전원주택을 알아보러 다니다 알게 된 동네입니다.

넓은 들녘에 햇볕이 죽은 데 없이 빽빽하게 들어서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이 곳에 집을 사지는 못했지만 남편은 못내 미련이 남는지 계속 이 동네를 들락거립니다; ㅎㅎ

 

 

 

 

간단한 민물 새우 잡는 법

 

 

가구 수가 많지 않은 시골동네라 저수지도 제법 맑습니다.

민물새우 잡는 법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은 듯 해요.

새우가 야행성이라 밤에 많이 모여든다고 하여, 하루 전에 통발을 던져두고 밤이 지난 후에 가서 건지면 그만입니다.

과연 새우가 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통발을 건졌습니다.

 

 

 

 

잡았다, 민물새우 !

 

 

펄떡 펄떡, 민물새우의 에너지

새우가 있네요!

많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새우의 씨알이 큽니다.

몸길이가 대충 3센티 내외가 되고, 뚜렷한 줄무늬가 있는 것으로 보아 흔히 새뱅이라고 부르는 토하 새우가 맞는 것 같습니다.

대야에 옮겨 놓으니 힘이 좋아서 펄떡 펄떡 뛰어 자꾸 대야 밖을 벗어납니다.

남편이 땅에 떨어진 토하를 주워서 대야로 다시 담기에 바쁠 정도입니다.

저는 처음엔 토하를 손으로 집지 못했습니다.

새우가 손가락을 물까봐(?) 무섭다고 하니, 얘네는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 있는 미세한 먹이나 먹고 사는 애들인데 뭐가 무섭냐고 합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잠깐 통발을 정리하러 간 사이에 애들이 마구 튀어나와 어쩔 수 없이 맨손으로 집어봅니다.

물지는 않지만 파닥거리는 힘에 흠칫 놀랐습니다.

 

 

 

 

근데 이제 조금 귀여운....

 

 

얘들이 생명력이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통에 저수지 물을 조금 담고 집에 데려오니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살아있어요.

예전에 계곡에서 버들치를 잡았을 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죽어버렸는데, 이 아이들은 한참이 지나도록 죽지도 않고 수많은 다리를 발발발 거리며 물 속을 돌아다닙니다.

보고 있자니 짠하고 귀엽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안돼...)

자세히 보면 가장 앞에 달린 기다란 다리의 끝에는 앙증맞게 브이(V) 모양으로 갈라진 집게도 갖고 있습니다.

그것도 집게라고....

그 조그만 집게로 물 속의 이끼나 조금씩 뜯어먹었으려나요.

계속 관찰하면 키우게 될 것 같아 애써 모른체 합니다.-_-

 

 

 

 

감성적인 글에 그렇지 못한 사진

 

 

 

생명을 먹는 다는 것, 그리고 아힘사

조금 무자비한 결론 사과드립니다.

새뱅이탕을 해먹기에는 수가 조금 적은 듯 해 남편이 새우깡(?)으로 탄생시켰습니다.

민물새우 튀김이라니,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네요. 그것도 직접 잡은.

근데... 너무 맛있습니다. ^^;;

사실, 물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던 아이들을 뻔히 보고서도 먹는다는 것은 좀 죄책감이 느껴지는 일입니다.

입으로 맛있게 먹으면서도 가증스럽게 이러한 불편한 마음을 내비치니, 남편이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미안한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식사를 하는게 정상적인거지."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눈앞에서 살아 날뛰던 생물을 잡아 먹어야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그것이 야만적이라고 느끼지만, 선조들은 오히려 그렇게 했기에 생명에 대한 감사함을 늘 지니지 않았을까요?

지금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살아있을 적 모습을 알 수 없는 육류와 햄, 가공된 생명들을 먹으며 우리는 미안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그들의 모습이 그것이었던 것 마냥... 당연하게 먹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러한 식사를 계속 해왔고요.

저는 모든 사람이 채식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부터도 완전한 비건이 되지 못하며, 우리에게는 다른 동물을 섭취하는 식사도 꼭 필요합니다.

다만 적어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이 동물이 원래 가졌을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애도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꼭 동물을 먹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이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아힘사(Ahimsa) 실천을 할 수 있습니다.

참 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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